1주동안의 견습이 끝나고 저번주 수요일 부터 돈 받고 일을 한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것,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는 것이 좋다.
가로 4미터, 세로 2 미터 짜리 컨버스 4개를 벽에 붙여놓고 동시에 작업한다.
재료는 에어브러쉬에 유화물감을 넣어 그린다.
유화물감 자체에도 독성이 많지만, 여기에 물감을 부드럽게 해 주기 위해서 필요한 용액,
유화물감을 빠르게 마르게 하기 위한 용액을 타는데, 이것들도 장난아닌 독성이 있다.
그걸 에어브러쉬에 넣어 캔버스에 뿌리기 때문에 항상 방독면을 착용해야 한다.
스튜디오에서 현광등 불빛을 보면 미세한 가루들이 먼저처럼 뿌옇게 떠다니는 것이 보인다.
그게 다 독성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방독면을 쓰고 있어도
숨을 깊게 들여마시기가 꺼려진다.

그리는 그림의 콘셉은 Marc Quinn 이라는 조각가가 4년전에 만들어 낸거라고 한다.
Marc Quinn 은 Demian Hurst 나 Tracy Emin 같은 영국현대미술계의 스타이다.
사람들이 출근할때 보는 메트로 같은 공짜 일간 신문의 예술면을
케이트모스의 형상을 금으로 처발라 만든 조소작업같은 걸로 채우곤 한다.
이 사람이 4년전에, 생명이니 자연의 순수함이니하는 순수회화 특유의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콘셉으로 얼려진 꽃들과 과일들을 사진으로 찍은 작업을 내 놨다고 한다.
이안 이라는 사람이 이 사진들에서 돈이 나올 구실을 보았는지, Marc Quinn 에게 이 사진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옮겨 그림으로 만들어 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전혀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Marc Quinn 을 위해 이 시리즈의 그림을
생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은 스튜디오를 스페인에 처음 만들어 줬다고 한다.

이안 이라는 사람은 피그먼트 프린팅 업계에선 독보적인 존재라고 한다.
피그먼트 프린팅은 유화로 캔버스에 프린팅을 하는 기술인데, 전문가가 봐도 원작과의
구분이 불가능하게 그 원본의 질감까지 살려 프린팅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르브루나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비싼 그림은
다 이 피그먼트 프린팅으로 복제된 것이고 원본은 지하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이안은 카바라지오 그림, 피그먼트 프린팅의 전문가라고 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 답게 이안은 우리가 하는 Marc Quinn 작업의 밑그림을
4미터가 넘는 커다란 캔버스에 프린팅해서 보내준다.
물론 프린팅된 밑그림의 기초가 된 과일과 꽃들의 사진도
Marcc Quinn 이 직접 찍은 것이 아니고 그의 어시스턴트들이 찍은거다.
내가 일하는 스튜디오에선 이 밑 그림위에 유화를 에어브러쉬로 뿌려 실제 그림을 제작한다.

이 그림들 연작들이 4년전부터 꾸준히 제작되고있고 팔려나갔다고 한다.
Marc Quinn 이 삼성이라면 이 연작 스리즈는 에니콜쯤 되는거 같다.
보는데 어려울것이 없는 과일과 꽃들이, 화려한 색깔로 사실적으로 표현된 그림들이다.
유명 브랜드인 Marc Quinn 의 싸인까지 곁들어져서 부자들사이에서 히트작이 된것은 당연해 보인다.
영국도 요즘 세계적인 금융위기 때문에 힘들다는 소리가 많이 나오는데,
이 그림들은 수량이 딸려서 못 팔고 있다고 한다.
뭐, 그 덕에 내가 새로운 페인터로 이 일을 잡은거다. 

그림 한장 가격이 약 150.000 파운드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물론 Marc Quinn 이 데부분을 때가고
이 돈 벌기 아이디어의 발상자인 이안역시 상당부분을 떼어간다.
실제 제작을 하는 나와 내 루마니아 동료 레즈는 한시간에 9파운드 받고 일한다.
나를 고용한 부르스 아저씨는 이 일에 250명이 넘는 지원자 메일을 받았다고 했다. 




by 판지상자 | 2008/10/27 07:47 | 일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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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판지상자 : 소호 소사이어티 전시 at 2008/11/30 07:24

... 있단다. 소호 마당발의 잔치라서 그런지 런던 연예계 사람들과 그 연예인들 때문에 온 파파라치들로 전시장은 붐볐다. 웃기게도 내가 여기서 자주 까대는 데미안 허스트니 트레이시 애민이니 막퀸이니 하는 영국 팝 아트 스타들이 이 전시에 참여했다. 특히 막퀸을 여기서 만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부르스 아저씨와 레즈도 초대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불빛이 터지고 티비 어디 ... more

Commented by 지인 at 2008/10/27 09:19
제가 씁쓸한건지 씁쓸함이 전해지는건지 구분이 잘 안되네요. Marc Quinn이 찍지 않은 사진, 그가 그리지 않은 그림이 그의 작품으로 불리는 것은 순전히 아이디어 때문인건가요?
Commented by 판지상자 at 2008/10/27 10:55
씁쓸한거 좀 들어달라고 써 봤어요. ㅎㅎ
"미술계" 라는 놈이 범인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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